학술지 출판계약과 라이선스 정책

안효질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학술지 출판계약의 기초

학술지 출판을 위해서는 통상 저작재산권을 양도하거나 저작물이용권을 부여한다. 저작재산권의 양도(copyright transfer)는 종국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처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작자의 입장에서는 그 결정에 신중하거나 이를 꺼리게 된다. 출판계약 중 선호되는 것은 타인에게 저작물 이용권(license)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는 저작재산권 자체는 저작자가 보유하면서도 저작물을 이용하는 출판사는 계약에 의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저작물 이용권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당사자 모두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저작물 이용권은 그 성질에 따라 배타적 이용권(exclusive license)과 비배타적 이용권(non-exclusive license)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의 양수인과 배타적 이용권자(exclusive licensee)는 그 권리를 등록할 수 있고 저작권 침해자에 대해 직접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반면, 비배타적 이용권자(non-exclusive licensee)는 그 권리를 등록할 수 없고 제소권도 없다. 다만 저작권자와 이용권자 사이에 제3자에게 동일한 내용의 저작물 이용권을 부여하지 않겠다고 내부적으로 특약을 맺는 이른바 ‘독점적 이용 허락’의 경우, 저작권자가 이용권자에 대하여 침해 배제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그 이용권자는 채권자 대위 소송의 방법으로 저작권 침해의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배타적 성질의 저작물이용권으로 설정출판권과 배타적 발행권을 나란히 규정하고 있다. 설정출판권에서 ‘출판’이란 저작물을 인쇄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문서(文書) 또는 도화(圖畵)로 발행하는 것을 말하는데(저작권법 제63조 제1항), 영어로는 ‘exclusive license to publish in print form’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배타적 발행권은 저작물을 발행하거나 복제·전송에 의하여 배타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말하며, 여기에서 설정출판권은 제외된다(동법 제57조 제1항). 영어로는 ‘exclusive license to publish (including in print or electronic form, and online)’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전통적인 종이 출판은 설정출판권과 배타적 발행권 양자에 포함될 수 있으나, CD-ROM, DVD, 또는 USB 등의 전자출판, 온라인 출판 등은 배타적 발행권에만 속한다. 설정출판권이든 배타적 발행권이든 그 설정 행위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맨 처음 출판 또는 발행한 날로부터 3년간 존속한다(동법 제59조, 제63조의2). 비배타적 성질의 출판허락계약(non-exclusive license to publish in print form)은 저작권법에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나, 특약이 없는 한 설정출판권에 관한 규정을 유추 적용한다.

명시적인 권리확보를 통한 분쟁예방

학술지 출판의 경우 저자와 학회(또는 출판사) 간 저작권의 귀속에 대해 명시적으로 약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헌에 따르면, 2015년 7월 31일 기준 총 1,890종의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를 분석한 결과 저작권 귀속에 관한 명시규정을 두고 있는 학술지는 67%인 1,273종에 불과하며, 상당수의 학술지에서 저작권 귀속 여부를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총 1,273종의 학술지 중 투고규정(instruction for author) 등에서만 저작권 귀속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48%인 608종, 저작권이양동의서(copyright transfer agreement) 등에서만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10%인 132종, 투고규정과 저작권이양동의서 양쪽에서 모두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42%인 533종에 달한다[1].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저작권이양동의서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교신저자가 공저자들로부터 출판에 대해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보장하고 그 교신저자만 서명한 저작권이양동의서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때에도 모든 공저자들이 서명한 동의서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자가 학회에게 부여하는 권리는 저작재산권의 양도, 배타적인 출판권의 설정, 비배타적인 출판 허락, 배타적 발행권의 설정 등으로 다양하므로, 이중 무엇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분쟁 예방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법률상 개념 또는 출판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자가 학회에 모든 저작재산권을 양도하는 경우에는 그 점을 특히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학술지는 저자에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저작물 이용 대가가 고액이 아니라면 당사자가 이른바 ‘매절계약(買切契約)’을 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저작재산권의 양도 또는 배타적인 성질의 출판권 설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 판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저작재산권을 양도하거나 저작물이용권을 포괄적으로 부여하는 경우에는 복제, 배포, 전송, 공중송신 등 학술지 출판에 필요한, 가능한 한 현재까지 알려진 모든 이용방법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학술논문의 전부 또는 도표 등 일부를 가공하여 이용할 권리를 학회 차원에서 확보하기 위해서는 2차적 저작물작성권도 부여한다는 점을 명시하여야 한다. 최근 학술지는 대부분 종이출판 외에 온라인으로 출판되거나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유상 또는 무상으로 제공된다. 따라서 저작재산권의 일부만 양도하거나 저작물이용권을 일부만 부여하는 경우에도 온라인출판 등의 방법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재산권의 양도나 출판권의 설정 등 어느 경우이든 양도 또는 부여되는 권리의 존속기간을 정할 필요가 있다. 서구의 다수의 상업용 학술지는 저작재산권의 존속기간(저작자 사후 70년)에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게 양도하거나 배타적 이용권을 부여한다는 취지로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많다. 학회 중심으로 발간되는 국내 학술지의 경우 이러한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분쟁 예방을 위해 그 존속기간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특약이 없는 한 그 존속기간이 3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술하였다.

국내외 많은 학술지가 오픈액세스 방식으로 제공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학회에 저작재산권을 양도하거나 배타적인 출판권 또는 발행권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그 저자 및 제3자는 그 논문을 (출판 즉시 또는 일정한 유예기간의 경과 후) 오픈액세스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도 CC-BY (저작자 표시) 또는 CC-BY-NC (저작자 표시-비영리) 등 CCL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야 한다.

진술·보장, 배상 또는 면책 조항

다음으로, 다수의 학술지 투고규정 등에 사용되는 진술·보장조항, 배상조항, 그리고 면책조항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 세 개의 개념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출판 실무에서 혼용되기도 한다. 우선 진술·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조항에서는 예컨대 저자가 그 논문을 실제로 창작하였다는 점, 공저일 경우 교신저자가 공저자들로부터 출판 허락을 받았다는 점, 투고된 논문은 과거에 출판된 적이 없었다는 점, 논문에 제3자의 저작물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그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는 점, 논문에 타인을 비방하거나 타인의 권리(저작권, 인격권 등)를 침해하거나 신뢰관계를 위반하는 등의 부적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 연구를 위해 재정적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 등을 저자가 학회(또는 출판사)에 대해 진술 또는 보장한다. 진술·보장조항에 포함된 사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학회가 제3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 학회는 위 조항을 근거로 저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배상(Indemnities) 조항에도 대체로 진술·보장조항과 유사한 보장 내용이 포함된다. 다만, 배상조항에서는 위 보장사항의 위반으로 인하여 학회가 부담하게 되는 손해배상액, 변호사 비용 등 각종 비용을 저자가 배상한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론적으로는 배상조항이 없더라도 진술·보장조항이 있으면 학회는 저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면책(Disclaimers; Limitation of Liability) 조항은 학회가 학술지의 독자(또는 학술지 웹사이트의 이용자)에 대하여 일정한 책임을 배제한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면책조항에는 예컨대 1) 논문에 포함된 의견이나 아이디어는 학회나 그 편집인 등의 것이 아니라는 점, 2) 논문에 포함된 정보나 데이터의 정확성, 상업성, 정보 등의 사용으로 인한 손해, 학술지나 웹사이트(광고 포함)에 포함된 제3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 웹사이트의 이용으로 인한 컴퓨터 바이러스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학회나 그 종사자 등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 3) 학술지나 웹사이트에서 언급된 상표나 상품 또는 광고 등에 대해서 학회는 보증하지 않는다는 점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 면책조항은 약관 형태로 존재하므로 우리나라 약관법이 적용되며, 이에 따르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책임을 배제하는 내용은 무효이다(동법 제7조 제1호). 결국 경과실 책임을 배제한다는 한도 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면책조항은 통상 학술지 웹사이트 중 ‘Legal Notice’, ‘Term of Use’ 등에 표시된다. 약관 형태로 제공되는 면책조항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위치(웹사이트 메뉴, 책 또는 학술지의 표지 바로 다음 쪽)에 면책조항이 존재하여야 한다(동법 제3조 참조).

이러한 조항들은 계약당사자 간의 관계에서만 효력이 발생한다. 진술·보장조항과 배상조항은 학회와 저자 간의 관계에서만 효력이 있고, 면책조항은 학회와 독자(웹사이트 이용자) 간에서만 효력이 있다. 면책조항 등만으로 제3자의 저작권, 인격권 등 침해에 대하여 학회 자체의 완전한 면책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학술지 출판을 업으로 하는 학회나 출판사는 학술지 출판에 고도의 주의 의무가 요구되며, 이를 위반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학회가 제3자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관행에 부합하는 심사 절차를 거치고, 표절검사 도구를 활용하는 등 학술지 출판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1. 정경희/김규환, “국내 학술지의 저작권 관리 특성 분석”, 정보관리학회지, 제33권 제4호(2016년 12월), 269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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